책 정리 단상

리노베이션 때문에 연구실이 엉망이다. 이틀 동안 정리를 했지만, 여전히 엉망인 채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새삼 깨닫는 것이지만, 나의 육신은 책이다. 책이 엉망이면 나도 엉망이 되는 것 같다. 이틀 동안 진전이 없으니 갑자기 우울해져서 혼났다. 나는 북호더까지는 아니지만, 책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아무리 이북이 나와도 종이책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예전에는 크기에 맞춰 책을 쭉 정열해두곤 혼자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내가 찾는 책이 그 자리에 꽂혀 있으면 된다. 기억과 책의 일치, 이게 나의 열망이다. 물론 가끔 기억은 왜곡되고, 산 책을 또 사기도 하는데, 이런 행위는 참으로 미스터리하다. 분명 그 책을 읽었는데, 또 사는 것이다. 심지어 읽고 그에 대한 글까지 써뒀는데, 마치 난생 처음이란 듯이 새로 주문한 책이 도착해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아마도 나의 독서습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관한 모든 책을 사모은다. 

게다가 나는 책을 빨리 읽는다. 한국어든 영어든 하루 시간을 바치면 웬간한 300페이지 분량의 책은 다 읽는다. 다른 일로 분주하더라도 3일 정도 투자하면 된다. 주로 이동 중에 읽는 경우가 많다. 책 읽다가 가끔 내릴 정거장을 놓치거나 엉뚱한 노선을 잡아 타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읽다보니까 이렇게 되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3살 때부터 글을 읽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력에 있던 글자들을 떠듬떠듬 읽던 애기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독서가 국력"이라고 믿던 '계몽'한 할머니 덕분에 책을 수레로 읽었다. 이건 은유가 아니라, 당시 손수레에 헌책을 싣고 와서 팔던 고물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흔쾌히 주머니를 털어 책 좋아하는 '기특한' 손자를 위해 수레 째 책을 사들이곤 하셨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한달이 가고, 한달 뒤에 다시 그 고물상이 방문하는 식이었다. 

어린 시절에 소설책을 열심히 읽긴 했지만, 성인이 된 뒤로 흥미를 잃었다. 청소년시절에 좋아했던 작가는 헤르만 헤세와 앙드레 지드였고, 헤밍웨이의 문체에 매혹 당해서 한동안 열심히 읽었다. 그러나 이미 당시에도 나는 철학책 읽는 것이 취미였다.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철학책을 읽으면 마음에 위안이 찾아왔다. 한때 만화책도 좋아했으나 40대를 넘긴 뒤로 흥미가 확 떨어졌다. 그러나 가끔 소설책을 휴가지 같은 곳에 들고 가서 읽기는 하지만, 평소에 즐겨 읽진 않는다. 왜냐하면 소설책은 빨리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로 철학책이나 역사책이 나의 식량이다. 두 종류의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시집들이 있다. 시집은 음미해가면서 천천히 읽어도 괜찮다. 영시보다도 파블로 네루다나 가르시아 로르카 같은 스페인 시들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에밀리 디킨슨을 거쳐 월러스 스티븐스와 E.E. 커밍스에 빠졌다. 시집은 소설책처럼 줄거리를 파악할 필요가 없으니 조바심도 나지 않는다. 

항상 쌓아놓은 책을 보면 죄의식이 느껴졌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한 마디에 죄의식에서 해방된 경험이 있다. 에코는 "다 읽은 책을 왜 소장하는가?"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세상에 읽지 않은 책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을 수집해서 소장하는 것은 결국 읽기 위함이다. 한번 읽은 책이라도 다시 읽어야할 필요가 있으면 소장하는 것이다. 여하튼, 모르는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는 것이라는 믿음은 틀린 적이 없다. 그 사람의 서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잡설은 이제 그만하고, 빨리 책정리나 마무리해야겠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