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라는 다크유토피아 세상읽기

영국 브라이튼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날아왔다. 주제는 파시즘과 포퓰리즘, 그리고 민주주의이다. 지금 영국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브렉시트인데, 학술대회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페이퍼들이 눈에 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된다. 요기라도 할 참으로 찾아든 카페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영국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이런 풍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이들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다. 연신 메시지를 체크하면서 건성으로 묻는 말에 대답하는 모양새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역시 다른 모습도 있는데, 아직은 무가지 신문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편의점 한쪽 면은 여전히 신문과 잡지, 그리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류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서구의 지식산업을 융성하게 만든 바로 그 물적 토대이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현대의 신화>에서 작가들의 여름휴가를 보도하는 저널리즘에 숨은 진실을 예리하게 파헤쳤는데, 역설적으로 작가들을 ‘교양의 화신’으로 만든 저널리즘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확인하는 ‘대가들’도 없었을지 모른다. 특히 이런 저널리즘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등장한 이른바 전후 세계체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들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그레이엄 그린이 아닐까. 한때 이들이 머물면서 작품을 집필했던 장소들을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모두 엄청난 관광지로 변모해 있지만, 당시에 이들이 찾아들었을 때는 대부분 한적한 동네들이었다. 이런 ‘전후 작가들’ 덕분에 유명해진 측면도 있겠지만, 그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던 시기와 이들이 거기에 머물던 시기가 서로 맞물려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난한 작가가 장기간 지내려면 무엇보다 물가가 싸야할 것이다. 그러나 관광지가 되어버린 지금은 더 이상 저렴한 생활비로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전후 자본주의의 복구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등장에 따른 변화이다.  

매체의 변화는 문화생산의 방식을 바꾼다. 잡지와 신문의 등장은 수많은 프리랜서의 생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진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이야기로 엮어서 원고료를 받고 파는 관행은 잡지와 신문 같은 근대 매체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도 비록 일제 강점기였지만, 문인논객의 원고료 수입이 적게는 120원에서 많게는 350원에 달했다고 한다. 신문기자 월급이 70원이고 의사월급이 100원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마디로 문인논객이 되는 것이 기자나 의사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좋았던 셈이다. 이광수처럼 당대 최고의 엘리트 지식인이 다른 일이 아닌 소설을 썼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설을 통한 국민 계몽이라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고려해볼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절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잡지와 신문이 과거만큼 원고료를 지불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굳이 외고에 많은 가치를 부여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특별한 내용이 잡지나 신문을 통해 보급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잡지와 신문이 정보와 지식을 독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매체들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겨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와 지식의 성격도 바뀌었다. 과거가 탐험가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관광객의 시대이다. 탐험가가 지리적으로 미답의 지역을 찾아가는 존재라면, 관광객은 이미 알려진 지역을 찾아가는 존재이다. 탐험가는 여행을 떠날 지역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관광객은 떠나기 전에 이미 해당 여행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관광객은 탐험가와 달리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 말할 수 있다. 

18세기만 해도 알렉산더 훔볼트처럼 남미의 오지를 탐사하고 멋들어진 보고서를 책으로 써낼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윌리엄 댐피어처럼 자신의 ‘해적질’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온갖 모험담을 책으로 엮어내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글을 쓴다는 것은 문자를 배운 몇몇에 국한되는 일이었다. 남들 하지 못하는 진귀한 경험을 한 이들이 반드시 좋은 글을 남긴다는 보장도 없었다. 

지식생산의 독점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의 경우는 확실히 비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이렇게 ‘배운 소수 엘리트’의 손에 들려 있던 지식생산의 능력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켰다. 나는 애플컴퓨터사가 개러지밴드라는 작곡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누구나 기본적인 사용법을 배우면 작곡을 할 수 있다는 발상은 당시에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뒤에도 애플은 아이튠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만의 음반을 편집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를 초래한다. 그러나 이런 민주화는 물질의 다양성이 표출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어떤 방향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다양성 자체를 진보라고 불러온 것이 서양의 계몽주의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기술이 곧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생각도 절대적인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유튜브는 기존의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성과들을 계승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된 기술이다. 한국 유튜브의 순간 접속자 수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25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는 이 매체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소식이다. 유튜브의 위력을 먼저 깨달은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논객들이었고, 이제 정치인들도 하나둘 유튜브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유튜브에 계정을 만들고 동영상을 업로드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개인의 손으로 전달해준 기술은 타자기였다고 할 수 있다. 타자기의 뒤를 이어 등장한 것이 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였다. 둘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의 글쓰기 기계이다.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타자기로 시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타자기로 글을 쓰려면 모든 문장을 다 완성한 뒤에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펜으로 글을 쓰는 장점은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다시 글을 다른 종이에 정서해야하는 수고로움이었다. 어떻게 보면 타자기는 이렇게 펜으로 쓴 글을 보기 좋게 옮기는 역할에 적합한 기계이다. 타자기가 융성할 때에 만년필 같은 필기도구가 전성기를 함께 누린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워드프로세서는 이런 펜과 타자기의 장단점을 결합해놓은 기계이다. 따로 정서할 필요 없이 워드프로세서는 바로 바로 생각을 활자로 옮길 수 있고, 문장을 그때마다 수정할 수 있다. 당연히 최종본은 따로 옮겨 쓸 필요가 없다. 이런 까닭에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는 서로 닮은 것이긴 하지만, 완전히 다른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튜브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달라도 한참 다른 성격을 가진 매체이다. 아이튠을 플랫폼으로 삼는 팟캐스트와 닮아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진다. 팟캐스트는 방송 시설을 따로 갖추지 않으면 방송을 하지 못하는 반면, 유튜브는 별 다른 방송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방송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유튜브는 다른 매체들에 비해 훨씬 1인 미디어의 정의에 충실한 매체이다. 다른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는 장단점을 모두 아우른 느낌이다. 일단 유튜브는 정보를 사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달한다는 소셜미디어의 특징에 충실하다. 그럼에도 영상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매체에서 볼 수 없는 현장성을 뽐낸다. 예를 들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글과 사진으로 전달하던 방식이 블로그였다면, 유튜브는 영상으로 생생하게 그 지역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 직접 생중계를 하기도 한다. 이 보다 더 정확하게 여행지의 정보를 전달하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러니 유튜브는 개인이 하나씩 텔레비전 방송국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경우도, 어떤 특정한 영상을 보면 그와 관련된 다른 영상들을 계속 추천해서 볼 수 있게 한다. 한 영상에서 만족한 내용을 찾지 못하더라도 다른 영상을 통해 필요한 것을 찾으면 된다. 주로 영화 리뷰 영상들이 그렇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여러 각도에서 리뷰를 들려주는 채널이 인기를 많이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영화 정보야 그렇다 쳐도 정치적 사안에 대한 유튜브 방송은 편향된 내용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에 아무래도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한 확증편향을 강화해주는 기능을 유튜브가 할 수 있다. 이 확증편향이 소위 ‘가짜 뉴스’의 원인이다.

포퓰리즘이 21세기의 정치 키워드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유튜브 역시 포퓰리즘의 강화에 한몫을 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정치는 포퓰리즘이 상수이다. 인류사에서 최초로 포퓰리즘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 세력은 파시스트들이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파시즘의 과거는 절대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일사분란한 정치적 행동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드러낸 극단적 폭력성은 많은 이들에게 독재에 대한 환멸을 확고하게 자리 잡게 했다. 포퓰리즘과 파시즘을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는 독재자의 인정 여부이다. 포퓰리즘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긴 하지만, 그 지도자가 독재를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강력한 지도자가 입안의 혀처럼 굴기 바란다. 자신들의 지지를 받고 집권한 지도자가 독재를 할 경우에는 탄핵시켜버린다. 

종종 한국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혼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민주주의가 확고한 정치적 대의를 갖는다고 한다면 포퓰리즘은 대의를 갖지 않는다. 물론 포퓰리즘도 절대다수의 대중을 위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대중이라는 추상적 대상을 전제로 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 추상적 대상은 기득권 엘리트라는 대상을 설정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포퓰리즘의 대중은 그러므로 기득권 엘리트와 짝패를 이루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포퓰리즘은 대의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그 지평 위에서 형성되는 원한 감정(resentment)의 산물이다. 물론 20세기 이후 민주주의는 일정하게 포퓰리즘과 함께 뒤섞여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바로 이런 모습을 띠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매체를 통해 형성되어 있는 성과가 없다면 유튜브 역시 이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성제도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이 있기에 시청자들은 유튜브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유튜브가 기존의 매체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다만 기존의 매체를 통해 만들어졌던 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지식과 정보생산, 그리고 소비의 헤게모니가 유튜브로 옮겨올 것은 확실하다. 유튜브와 유사한 플랫폼이 넷플릭스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영화라는 일정한 장르에 부합하는 영상물을 제공한다. 유튜브는 이를 넘어 자기의 영화를 업로드해서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다. 유튜브가 대세가 되는 시대에 영화의 완성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보려고 관객들은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영화관에 간다. 구매체와 신매체는 공존하겠지만, 주도권을 쥐는 매체는 신매체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우리는 변화의 와중에 있다. 앞선 매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유튜브에 이르러 결정적 변화가 생겼다. 이 결정적 변화는 완전한 1인 미디어의 구현이다. 누구든 진짜 같은 영상물을 만들어 보급할 수 있다. 방송국 시청률보다 더 정확하게 ‘구독자 수’가 공개되는 투명한 세계가 유튜브이다. 방송인의 인기도가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완벽한 감시의 시스템이다. 이 디스토피아의 세계야말로 기술이 만들어놓은 다크 유토피아의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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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레탕트 : 펌/ 유토피아라는 다크유토피아 2019-03-17 17:32:12 #

    ... * 아래는 이택광 교수의 &lt;유튜브라는 다크유토피아&gt; 글 중 일부를 옮긴 내용이다.( wallflower.egloos.com/4167944) (...)포퓰리즘이 21세기의 정치 키워드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유튜브 역시 포퓰리즘의 강화에 한몫을 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정치는 포퓰리즘 ... more

덧글

  • Barde 2019/03/15 13:39 # 답글

    매일 유튜브를 시청하는 입장에서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 뿌리 2019/07/06 14:09 # 삭제 답글

    다크 유토피아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된 건가요?
  • 이택광 2019/07/06 23:44 #

    관련 내용을 곧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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