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가 어디에 닿을지 모를지라도 단상

근대는 편지의 시대였다. 물론 이 근대는 유럽의 확장이기도 했다. 이 근대의 기반이 유럽의 ‘만국우편연합’이었다. 우편은 전근대의 존재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존재의 조건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에 비견할 만한 변화가 이 우편을 통해 확립되었다. 싱가포르에 있는 풀러턴 호텔은 아시아를 총괄하던 영제국의 우편국이었다. 이 우편국을 통해 식민지의 소식이 유럽으로 전달되었다. 소설가 조셉 콘래드 역시 이 우편국에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가 닿았던 곳에서 바로 유럽의 계몽주의가 피어났다.

이런 탐험가들의 편지를 모아서 출판하는 매체가 신문이었고 잡지였다. 임마누엘 칸트 같은 유럽 지식인들이 '글로벌 정보'를 취득하던 방식이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온 탐험가들을 만나는 한편으로 칸트가 당시의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했다는 사실은 이른바 계몽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의 논리를 구성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터넷이 우편을 대체한 이 시대는 반계몽주의를 내용으로 한다. 반계몽주의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욕망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믿음에 뿌리를 박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안다. 다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믿음이 반계몽주의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이 반계몽주의는 계몽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 계몽주의의 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메일을 보내지만 여전히 편지도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닿을 곳을 모르더라도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용기가 필요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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