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 세상읽기

십 여년 전 일본에 가면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바로 지하철에서 너도 나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담한 문고본을 펼쳐 들고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책에 눈을 박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나만 그 장면들을 기억에 새겼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의 신문에 “책 읽지 않는 한국”을 개탄하는 칼럼이 실리면 으레 복잡한 지하철도 마다하지 않고 책을 읽는 일본의 독서 습관을 예로 드는 것이 다반사였다. 확실히 일본 하면 책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도쿄의 헌책방이 몰려 있는 진보초에 가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말 그대로 책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 많은 대학들이 설립되면서 그 주변에 생겨난 이 고서점들은 도쿄에 가면 내가 꼭 들러서 절판된 서적들을 찾아보곤 했던 곳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일본에서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간혹 가죽 커버를 입힌 문고본을 고이 읽고 있는 머리가 희끗한 승객들도 남아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독서현실을 개탄하는 기사들도 드물어졌고, 독서 모범국 일본을 거론하는 칼럼도 사라졌다. 이런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속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정보의 취득 수단으로서 독점적이었던 책의 기능은 쇠퇴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식의 체계화 기술로서 책이 사라졌다고 단언하는 것도 옳은 판단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식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식은 책의 편제를 여전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모니터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다고 해도, 그 텍스트의 편집은 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우리가 책을 펼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의 이미지로서 책은 지배적인 인식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세로 판형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읽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중국이나 한국은 가로 판형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읽는 방식을 채택했다.내 어린 시절만 해도 세로 판형의 책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책을 만들지 않는다. 이처럼 텍스트의 편집 방식은 지식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래서 인쇄를 통제하는 일은 권력의 현안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정조의 문체반정은 가벼운 책을 누워서 보면 게을러지기에 얇은 책의 제작을 금지하는 칙령이기도 했다. 책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책의 판매부수가 곧 권력이 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무명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 <나의 투쟁>의 상업적 성공 덕분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지적하듯이, 근대의 도래는 책의 범람을 초래했다. 근대 이전에 장원 하나 값에 달했던 비싼 책들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누구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흔한 물건이 되었다. 책이 넘쳐나서 이제 무엇을 읽어야할지 모를 지경이 되었기에 울프 같은 작가는 보통의 독자들을 위한 독서 안내를 기고하기도 했을 것이다. 철도 여행 중에 읽을거리가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가벼운 책을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가 바로 펭귄 출판사의 창립자 앨런 레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책과 독서의 관념을 만들어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책의 대중화를 가능하게 만든 물적 토대는 그 무엇도 아닌 신문과 잡지였다. 이 신문과 잡지는 길게 보면 임마누엘 칸트 같은 유럽 지식인들이 글로벌 정보를 취득하던 방식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온 탐험가들을 만나는 한편으로 칸트가 당시의 신문을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알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른바 계몽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의 논리를 구성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오늘 바뀐 독서 풍경은 지식 생산과 유통의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시대는 굳이 돈 주고 살 필요 없는 텍스트들이 널리고 널려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지식을 얻기 위해 우리는 책을 사보려고 한다. 이 거부할 수 없는 이 지적인 호기심이야말로, 먼 곳을 여행한 탐험가를 집으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칸트의 미덕이기도 했다. 시대는 바뀌었어도 그 순수한 호기심이 앞으로도 우리를 우리로서 존재하게 할 것이다. 이 호기심이 지속하는 한, 책은 그 형태를 달리할 뿐, 계속 우리의 손길 닿는 곳에 놓여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덧글

  • 채널 2nd™ 2021/11/07 00:14 #

    그렇게 쪽바리들이 책 많이 읽는다고 울부짖었던 -- 극히 일부의 극일 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이......

    (세월의 무상함)
  • rumic71 2022/02/16 12:31 #

    95년에 처음 동경 갔을때 책 읽는 모습을 직접 보려고 했는데 안보이더군요.
  • 광주폭동론 2022/02/17 06:32 #

    지적 호기심이 있는 한 책은 여전히 우리의 손길이 닿는 곳에 있으리라는 논리는 어색하네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에 밀려 책은 점점 우리의 손길에서 멀어진다고 봐야죠.
    책만이 가진 장점이 있는 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애써 구해 입어야 할 한복같은 존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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