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단상

어쩌다보니 2022년을 베니스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때문에 온 김에 쓰던 책을 마저 완성할 생각으로 볼로냐 대학에 적을 두고 1월까지 체류하기로 했다. 팬데믹 심화로 볼로냐 대학 역시 별로 갈 일이 없기에 계속 베니스에서 지내고 있다. 사실 살기는 친구들 많고 맛있는 게 즐비한 볼로냐가 좋지만, 시국이 시국 아닌가. 되도록 사람들 만나지 말고 나에게 가장 맞는 스토아주의의 두건을 쓰고 칩거하겠다는 취지를 살려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겨울 베니스를 온전히 살아보기로 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내 취향은 여름 베니스보다 겨울 베니스에 들어맞는다. 디킨스가 묘사했던 그 음침하고 스산한 안개 낀 베니스의 풍경은 오히려 나 같은 이방인의 생소함을 지워주는 은신처였다. 이런 베니스가 주는 기운 덕분인지 책 집필도 예상대로 잘 진행되어서 계획대로 끝을 볼 듯하다. 뜻밖에도 평소 써놓은 원고를 모아서 출판하고 싶다는 전갈을 다른 영국 출판사가 보내와서 아마 그것도 2월까지 정리해서 보내야할 것이다. LA리뷰오브북스 부록에 실린 <오징어게임>에 대한 나의 비평도 반응이 나쁘지 않아, 뉴요커 같은 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휴양지에서 조용히 늙어가는 노후가 나에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잠깐 했다. 물론 그때까지 이 지구의 환경이 남아 있어야하겠지만 말이다. 근대의 판타지를 지탱하던 그 문명의 토대가 붕괴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달콤한 꿈을 꾸다가 갑자기 우울한 현실로 깨어나는 2022년 벽두이다. 2021년에 나는 내 스승으로 삼았던 몇몇 분들을 떠나 보냈다. 존경하는 분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 작은 마음이나마 자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보다 줄어들어버린 희망을 안고 올해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쨌든 또 한 해를 열심히 가보자.









덧글

  • 잘생긴 펭귄알 2022/01/05 10:16 #

    그럼에도 또다시 잘 살아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늘 응원합니다. 건강한 한 해 보내십시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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