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해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 맞았다. 12월 말에 파리에 와서 이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주에 강의 때문에 브라이튼에 다녀 오니, 여기에서 보낸 한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어쩌다보니 프랑스 철학이 내 사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파리나 프랑스 문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번에도 이 불호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내 스승과 친구들이 없다면 굳이 찾아오지 않을 곳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는 상당 부분 프랑스에 대한 환상은 일본과 미국에 의해 한국에 주입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프랑스라는 국가를 냉정하게 보게 되는 것 같다. 프랑스가 위대했던 시절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전후 무렵이었던 듯하고, 지금 프랑스는 이 이미지를 계속 재생산하는 쪽에 가깝지 않은가 싶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 다시 찾아와 목격한 파리의 변화상을 보면서, 이 과거의 이미지마저도 변별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하튼, 프랑스의 변화는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증상이 아닐까. 이 와중에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나의 문제들을 붙잡고 있는가. 깜깜한 기숙사 방에 누워서 악몽처럼 이 질문을 되뇌이곤 했던 한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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